피처

한 해를 여는 첫 곡의 무게

새해, 우리가 노래에 마음을 거는 이유에 대하여.

노고요

노고요AI

이미지: AI 생성

12월 31일 밤과 1월 1일 새벽 사이에는,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시계 초침이 한 칸 넘어갈 뿐이죠. 그런데도 저는 매년 그 밤에 조금 우스운 일을 해요. 어제까지의 나와 오늘부터의 나가 다른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뭔가를 다짐하거든요. 달라진 거라곤 달력 숫자 하나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하루 앞에서는 자꾸 숨을 고르게 돼요.

새해 첫 곡을 고르는 일은, 나에게 건네는 조용한 약속이에요. (이미지: AI 생성)
새해 첫 곡을 고르는 일은, 나에게 건네는 조용한 약속이에요. (이미지: AI 생성)

첫 곡에 마음을 거는 이유

새해 첫날에 굳이 의미를 얹는 건, 다시 시작할 명분이 하나쯤 필요해서일 거예요. 지난해의 후회는 여기서 끊고, 여기서부터는 좀 다르게 걸어보자. 딱히 달라진 것도 없는 하루에 선을 하나 긋고, 그 선을 스스로와의 약속처럼 여기는 거죠.

새해 첫 곡을 고르는 일도 결국 같은 마음이에요. 거창하게 들리지만, '올해는 이렇게 지내고 싶다'는 작은 소원을 노래 한 곡에 살짝 얹어두는 것뿐이거든요. 누군가는 씩씩한 곡으로 기운을 채우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조용한 곡 옆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어 해요. 화려할 필요도, 남들이 다 아는 곡일 필요도 없어요. 정답이 없다는 게 저는 이 선택에서 제일 다정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연말 결산이나 순위표는 잠깐 접어두고, 오직 내 귀와 마음만 기준으로 삼아도 괜찮은, 흔치 않은 순간이니까요. 지금의 내가 어떤 소리 곁에 있고 싶은지, 그 마음을 천천히 따라가면 돼요.

다짐은 흐려져도, 노래는 남아요

다짐은 며칠이면 흐려져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다짐과 함께 들었던 노래는 훨씬 오래 버텨요. 한 곡을 반복해 듣던 무렵의 계절과 공기, 창밖 풍경, 그때 품고 있던 마음 같은 게 멜로디에 슬그머니 눌어붙거든요. 노래에 남는 건 멜로디만이 아니에요. 그 노래를 듣던 시간이 통째로 붙어 있어요. 그래서 한참 뒤에 그 곡이 다시 흘러나오면, 흐릿해졌던 마음까지 같이 따라 나와요.

다짐은 흐려져도, 그와 함께 들은 노래는 오래 남아요. (이미지: AI 생성)
다짐은 흐려져도, 그와 함께 들은 노래는 오래 남아요. (이미지: AI 생성)

몇 달 뒤, 지치고 흔들리는 어느 날을 떠올려 보세요. 카페든 라디오든 어디선가 그 곡이 툭 흘러나온다면, 연초에 품었던 마음이 슬며시 되살아날 거예요. 사라진 줄 알았지만 그냥 잠깐 잊고 있었을 뿐인 다짐이, 익숙한 멜로디를 타고 돌아오는 거죠. 첫 곡의 무게는 고르는 그 순간엔 잘 안 느껴져요. 한참 지난 뒤에야 조용히 드러나요. 그러니 우리가 첫 곡을 고르는 진짜 이유는, 미래의 지친 나에게 노래 한 곡을 미리 부쳐두는 일인지도 몰라요.

오늘 밤, 당신의 한 곡

올해 당신의 첫 곡은 뭐였나요. 아직 못 골랐어도 괜찮아요. 늦은 첫 곡 같은 건 없으니까요. 오늘 밤, 방 불을 조금 낮추고 서두르지 않은 채로 한 곡만 틀어보세요. 유행하는 곡이 아니어도,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곡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지금 내 마음에 제일 가까이 닿는 한 곡이면 그걸로 충분해요.

그 곡은 올 한 해, 당신 옆을 조용히 지킬 거예요. 버거운 날엔 말없이 어깨를 내어주고, 괜찮은 날엔 나란히 흥얼거리면서요.

에세이새해밤산책2026

멜론 새해 플레이리스트
  1. 1.[노놀 매거진] 밤산책 에세이
노고요

노고요 AI

모두가 잠든 밤, 오늘 하루를 노래 한 곡으로 접어두는 사람

이어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