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줄을 다섯 번 부르고, 4분 48초 동안 크기가 1.5dB 안에 있다
레인보우99가 13년 산 동네를 앨범 한 장에 옮겼습니다. 그 동네는 지금 절반이 사라졌어요.


가사가 네 줄뿐인 곡이 있다.
결국엔 사라질 오늘 / 결국엔 사라질 우리 / 결국엔 사라질 모두 / 그래서 아름답구나
레인보우99의 '결국엔 사라질 모두'다. 이 네 줄이 5분 30초 동안 다섯 번 반복된다. 세 번째 연 뒤에 1행과 3행만 남긴 두 줄짜리 변형이 한 번 끼어드는 것이 전부다.
앨범 「능곡블루스」는 열한 곡인데, 가사가 있는 곡은 이 한 곡뿐이다. 나머지 열 곡은 전부 연주곡이다.
열세 해 산 동네가 절반 사라졌다
그가 직접 쓴 소개글에 이렇게 있다. "이번 앨범은 13년간 지내온 동네 능곡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지금 재개발이 한참이어서, 이미 동네의 반은 사라졌고, 버스노선도 마을버스 말고는 사라져버린 상태."
곡 제목이 전부 그 동네의 지명이다. 지도공원, 능곡시장, 지도로 80번길, 지도에 없는 길, 빈집들, 퇴근길, 패트롤.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본인이 적어 뒀다 — 지도공원은 집 바로 옆 늘 지나가던 공원, 지도로 80번길은 집 앞 골목, 빈집들은 재개발로 텅 빈 집들. '능골지짐이'는 음식이 아니라 재개발에도 남아 있는 실내포차의 이름이고, '패트롤'은 사라질 동네 사진도 못 찍게 하는 재개발 조합의 순찰이다.
8월에는 '지도공원'을 먼저 냈는데, 그 방식이 이 앨범의 태도를 말해 준다. 그 곡을 지도공원에 들고 가서 공원에서 직접 녹음했다. 크레딧에도 'recorded & mixed by RAINBOW99 at Jido Park'으로 적혀 있다. 7분 36초짜리 라이브 음원이다. 앨범 1번 트랙은 7분 20초의 다른 녹음이니, 같은 곡의 다른 판이 두 개 있는 셈이다.
혼자 만들었다
크레딧이 짧다. 프로듀싱·작곡·편곡·연주·녹음·믹싱·마스터링이 전부 본인이다. 연주 표기는 'programing, guitar, piano, trumpet, vocal, sound design'. 뮤직비디오도 본인이 찍었다 — 영상 끝 크레딧이 'Music & Video RAINBOW99'다. 아트워크와 모션그래픽만 G99가 맡았다.
이게 이전 작업과 가장 다른 점이다. 2022년 9월과 11월에 싱글 두 장, 2023년 1월에 앨범 한 장으로 이어진 '재개발 블루스'는 서울 청량리·신림·을지로·방배 네 곳을 찾아가 만든 프로젝트였고, 사진작가와 비주얼 아티스트가 함께한 팀 작업이었다. 각 장소에서 곡을 만들어 그 자리에서 라이브를 찍었다.
이번은 네 곳이 아니라 한 곳이고, 남의 동네가 아니라 자기가 열세 해 산 동네이고, 팀이 아니라 혼자다.
본인은 이 앨범을 '정규 20집'이라 부른다. 2023년 '재개발 블루스'를 '정규 11집'이라 적었으니, 3년 8개월 사이에 아홉 장을 더 낸 셈이다.
작법은 '타령'이라고 본인이 못 박았다
"아, 뭔가 타령같으면 좋겠다 하는 감정으로 작업하고 연주했습니다. 사라질 동네를 바라보는 복합적인 기분은 어떻게도 표현하기 어려웠는데, 이건 타령이다 하고 생각하니 정말 타령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작업이 완성되어 갔어요."
그리고 측정해 보면 이 말이 그대로 소리에 있다.
4분 48초 동안 크기가 1.5dB 안에 있다
타이틀곡을 재 봤다. 5분 30초, 120.2BPM.
0분 16초부터 5분 04초까지, 4분 48초 동안 1초 평균 레벨이 −7.2에서 −8.7dB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는다. 변동폭이 1.5dB다. 저역 비중도 내내 16~21%로 유지된다.
후렴과 절의 대비가 없다. 브레이크도, 드롭도, 빌드업도 한 번도 없다. −38dB 아래로 떨어지는 1.2초 이상의 구간을 전수로 찾아봤는데 곡 중간에는 0건이고 끝의 3초뿐이다.
네 줄을 다섯 번 반복하는 구조와 소리의 모양이 정확히 같다. 타령이라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설계였다.
다만 시작만은 다르다. 처음 15.5초는 저역이 3.9~5.3%뿐이고 중역이 45~55%를 가져간다. 그러다 0분 15.50초에 먼저 고역이 터지고(5.5% → 17.3%), 그 0.65초 뒤인 0분 16.15초에 저역이 들어온다(6.8% → 26.2%). 레벨은 6dB, 저역 비중은 다섯 배가 뛴다.
같은 지점에서 소리가 접힌다. 사이드/미드가 도입부 +0.7dB(좌우로 활짝 벌어진 상태)에서 −4.6dB로 내려앉는다. 밴드가 들어오는 순간 가운데로 모인다.
시작한 소리로 닫는다
5분 04.20초에 저역이 17.3%에서 2.2%로 빠진다. 0.1초 만이다.
그 뒤 16초짜리 아우트로가 이어지는데, 대역 분포가 도입부 15초와 같다 — 저역 3~6%, 중역 45~52%. 좌우 폭도 −0.2dB, −0.8dB로 도입부 수치로 돌아간다.
곡의 처음과 끝에서만 가운데가 비고 좌우로 퍼진다. 그 사이 4분 48초는 가운데에 모여 같은 크기로 간다. 동네가 있던 자리와 사라진 자리를 같은 소리로 감싸 놓은 모양이다.
화면은 그 동네다
뮤직비디오는 기타를 멘 인물을 주로 뒤에서 따라간다. 골목, 담쟁이 덮인 빈집, 풀이 허리까지 자란 공터, 노란 공사 바리케이드, 벽에 붉은 스프레이로 쓴 '출입금지', 밤거리. 그 위에 손글씨 흰 글자로 가사가 획 단위로 그려졌다 사라진다 — '결국엔', '사라질', '그래서', '오늘'.
앨범 표지는 "이제는 사라진 영미네 포차에서 언제인지 모를 때에 촬영된 사진"이다. 그 위에 본인이 옥스포드 블럭으로 만든 캐릭터를 G99가 3D로 올렸다. "어느 방향으로도 묵묵히 걸어나가는 모습을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했다.
언제 들으면 좋을까
걸으면서. 1시간 1분 42초짜리 앨범이고 열한 곡 중 열 곡이 연주곡이라, 가사를 따라가야 할 데가 한 곡뿐이다. 나머지는 배경으로 흐르게 두면 된다.
그리고 타이틀곡만 먼저 들으실 거면 5분 30초 내내 크기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들어 보시길. 커지기를 기다리다 보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대신 같은 자리에 오래 머무는 소리가 무엇을 하는지가 들린다.
결국엔 사라질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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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소식
- 1.[벅스] RAINBOW99 '능곡블루스' 발매 ↗
- 2.[POCLANOS] '능곡블루스' Official MV ↗

노놀 편집부
좋은 노래를 먼저 듣고 건네는 노놀 매거진 편집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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